담임목사/설교

[21세기 기독교 강요15]인간이 되신 하나님

Caleb Shin 2019. 6. 18. 08:27

 

#본문: 히브리서 2장 5-18절
#기독교 강요 제 2권 12장 그리스도는 중보자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인간이 되셔야만 했다.
                          13장 그리스도는 인간의 육신의 참 본질을 취하셨다.
                          14장 중보자의 두 본성이 어떻게 한 위격을 이루는가?


우리는 지난 몇 주간 구약 속에 신약이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살펴봤습니다.
1) 구약성경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심각하게 죄에 편향되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신약의 원죄론이다.
2) 구약성경에 있는 율법은 처음부터 그것이 문자적인 법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규정하는 도덕법이었다.
3) 구약의 율법은 주어지는 순간에 이미 율법 준수가 실패할 것이고, 수많은 예언자들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끝내 최종적 심판을 받고 말 것임을 예고했다.
4)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율법을 주시고, 새 언약을 맺으실 것이다.
5) 이 새 언약은 아들이 오심으로써 가능하다.

오늘은 칼뱅의 기독교 강요 2권의 마지막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부분은 기독론 논쟁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교리를 해설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2쳔 년 전 예수라는 이름의 나사렛 출신의 청년 목수를 ‘주/그리스도/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고백하는 종교입니다.
1) 기독교는 신이 인간이 되셨다고 믿는데 이것은 유대교인들에게는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구약의 유일신 전통과 어긋나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만일 신이라면 하나님도 신이고, 예수도 신이니 신이 두 분이 될 게 아니겠어요?
이것은 유대인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이단사설이었습니다.
2) 또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기독교 신앙은 헬레니즘 문화권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신은 영원한 존재이고, 인간은 유한한 존재인데, 무한한 신이 어떻게 유한한 인간이 될 수 있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도대체 신이 인간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이렇게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초기에는 기독교 신앙이 이처럼 거센 반발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반발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굳이 신이 인간이 되셔야 했는가? 
위대한 예언자나, 천사나, 영적 존재를 보내시지 않고, 꼭 신이 인간이 되셔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 먼저, 예수 그리스도는 중보자로 오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갈3:19, 20] [딤전2:5] [히8:6; 9:15; 12:24]
중보자란 무슨 뜻입니까? mediator, 중개인이라는 뜻입니다. cf. 화해자, 중재자... 
ex)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
[갈3:20]그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중보자는 서로 사이가 벌어져 있는 양쪽의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의 양편 사이에 서서 양편을 중개하는 중보자십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벌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중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왜요? 관계가 깨어져 있기 때문이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깨어져 있습니다. 왜요?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의 본질은 언약 관계입니다.
선악과 언약, 아브라함 언약, 그리고 토라를 통한 모세의 언약... 
하나님은 이 언약을 신실하게 지켰지만 인간은 언약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언약이 깨어졌습니다.
인간과 하나님은 새로운 언약을 맺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새 언약을 중재하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새 언약의 중보라고 부릅니다. [히8:6; 9:15; 12:24]

2. 중보의 중요한 자격이 있습니다. 그것은 양편의 손을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손으로는 하나님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인간의 손을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먼저 인간이셔야 합니다.
오늘 9절을 보면 예수님이 반드시 인간이 되셔야 했던 이유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9절: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반드시 인간이 되셔야 하는 이유는, 죽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죽지 않습니다. 천사도 죽지 않고, 사탄과 마귀도 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죽습니다. 왜냐? 범죄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죽음이 들어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반드시 인간이 되셔야 하는 이유는, 죄 때문에 죽어야 하는 인간을 중보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을 좀 더 명료하게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14-15절] 이 자녀들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그도 역시 피와 살을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죽음을 겪으시고서,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멸하시고, 또 일생 동안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하는 사람들을 해방시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피와 살을 가지셔야 했습니다.
그래야 고난을 겪으실 수 있고, 또 죽음을 겪으실 수 있습니다.
죽음을 겪으셔야만 부활로써 죽음을 정복하실 수도 있으십니다.
그리고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정복하셨으며,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는 악마를 멸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사람들을 해방시키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반드시 인간이 되셔야 했습니다.

-> 교회사 속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하는 많은 이단들을 보게 됩니다.
영지주의 이단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부정한 물질인 육체를 가지셨을리 없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실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만 취했다고 했습니다.
이를 가현설이라고 부릅니다. 마르키온도 이와 비슷하게 가현설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대로라면 예수님은 인간과 무관한 존재입니다.
인간과 무관한 분으로서 예수님은 우리 인간을 중보하실 수 없습니다.
고난을 겪지 못하신 분이 우리의 고난을 무슨 수로 구속하시며,
죽음을 겪지 못하신 분이 무슨 수로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내시겠습니까.
또 마니교와 같은 이단은 예수님의 몸은 천상의 몸이었으며, 위대한 능력을 지니셨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셨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 마디로 십자가는 CG나 특수효과라는 주장인데요, 이 역시 그저 이단적인 주장일 뿐입니다.
실제 고통이 없는 십자가는 우리의 고통을 피상적으로만 건드릴 뿐입니다.

오늘날 정통 교리를 수호한다고 주장하는 교회에서도 예수님의 신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셨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이 피곤하시고, 배가 고프시고, 성욕도 느끼시고, 유혹도 받으셨다는 사실을 얘기하면 마치 큰일 날 것처럼 펄쩍 뜁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인성을 축소하는 것은 이단적인 사상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완전히 똑같은 인간이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완전한 인간이 되신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17절: 그러므로 그는 모든 점에서 형제자매들과 같아지셔야만 했습니다. 왜냐?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비롭고 성실한 대제사장이 되심으로써, 백성의 죄를 대신 갚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는 나와 똑같은 인간 조건을 사셨습니다.
우리는 외로울 때, ‘하나님, 당신은 제가 얼마나 외로운지 모르시죠?’
병 때문에 아플 때, ‘하나님, 제가 얼마나 아픈지 알아요?’
힘들 때, ‘하나님, 제가 지금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이 배신했을 때, 외로우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충분히 아프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충분히 힘드셨습니다.
내 모든 상황과 사정을 직접, 몸소 겪으셨기 때문에 다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나와 똑같은 조건에서 율법의 모든 요구조건을 충족시키셨습니다. 우리는 실패했지만요.
무죄한 자로서 유죄한 자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기 위함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하심 때문에, 우리의 죄가 대신 속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3.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로서 예수님은 인간인 동시에 하나님이셔야 했습니다.
굳이 신이 인간으로 오셔야 했던 이유는 뭘까요?
모세나 엘리야와 같은 위대한 인간들 중에서 하나님의 종/메시야로 오시면 안 되었을까요?
만일에 천사가 리얼 인간으로 성육신을 하면 안 되었을까요?
사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시라는 기독교 신앙은 1세기부터 거센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이 사울이었을 적에 기독교도를 박해했던 주된 이유도 이 때문이었어요.
어디 감히 인간 주제에 나사렛 출신 목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니, 하나님이니 이런 주장을 하다니 바울은 이것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온 힘을 다해서 핍박하고, 박해하고, 때리고, 죽이고 그랬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겠다고 고백한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예수가 메시아인 것은 인정하겠지만,
하나님의 아들/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은 따를 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주로 유대인 출신의 기독교인들인데, 에비온주의자들이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여호와증인과 비슷한 주장을 했는데, 예수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아리우스라는 사람은 예수님은 인간과 천사 중간 정도 되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사모사타 지역의 바울이라는 사람은 예수는 평범한 인간이었는데, 그 인간이라는 그릇에 하나님의 말씀/영이 임해서 하나님의 특별한 종이 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주장을 신천지 이만희가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예수는 위대한 인간이지만 신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뒤에도 이런 주장을 한 사람들은 너무도 많습니다.
이슬람교, 여호와증인, 신천지, 문선명, 다빈치 코드, 자유주의 신학자들... 
이들은 다 예수님이 신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예수님이 분명히 하나님이시라고 증언합니다.
히브리서 1장 5절에서 “하나님께서 천사들 가운데서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라고 말합니다.
또 1장 8절에서는 구약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주님의 보좌는 영원무궁하며, 공의의 막대기는 곧 주님의 왕권입니다.”
본문 3절에서도 “집을 지은 사람이 집보다 더 존귀한 것과 같이, 예수는 모세보다 더 큰 영광을 누리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라고 하지요. 
집은 누구겠습니까? 모세죠, 집을 지은 사람은 예수님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모세를 지으신 분, 곧 창조자시라는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논증이 있으나 여기서는 예수님이 중보자시라는 것에 집중해봅시다.
1) 만일 예수님이 신이 아니라면 어떤 결과가 일어납니까?
예수님이 신이 아니라면, 예수님은 인간과 신 사이의 중보자가 되실 수 없게 됩니다.
인간 중에서 뛰어난 인간이 될 수도 있고, 인간의 대표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 그는 한 인간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요.
한 손으로는 인간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하나님의 손을 잡을 수 있는 분만이 참된 중보자가 되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반드시 참된 인간이셔야 하고, 동시에 참된 하나님이셔야 하는 것입니다.

2) 만일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예수님은 우리 인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왜냐? 구원이란 인간과 하나님이 화해하는 것이며, 재연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깨어져버렸습니다.
구원이란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화해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피와 살과 뼈를 가진 인간으로 우리와 동일시되셨으며,
또한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하나님과 동일시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안에서 인간과 하나님은 재연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원의 창시자입니다.

3) 만일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예수님은 인간 전체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설사 예수님이 율법을 다 지키고,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개인을 위한 것일 뿐,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둘째 아담이 되셨으며, 이로써 온 인류의 구속자가 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고로 예수님은 완전한 신이면서 완전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완전한 신으로만 여기고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이단입니다.
그 반대로 예수님을 완전한 사람으로 보고, 완전한 신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단입니다.
 
4.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좀 까다로운 주제인데요, 단성론/양성론 논쟁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어떻게 결합되는가? 하는 문제에요.
만일 예수님이 신이면서 인간이라면 이 두 본성이 과연 한 인격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혹시 서로 다른 두 인격이 어색한 동거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4세기부터 7세기까지 이 문제를 두고 엄청나게 논쟁했는데요,
이 문제에 대한 교회의 답은 두 본성은 완전한 한 인격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1) 양성론을 주장한 네스토리우스는 신성과 인성이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는 두 본성을 지나치게 구분하는 바람에 두 본성이 분리된 것처럼 말했습니다.
하지만 두 본성은 분리되지 않고 구분됩니다.

2) 반대로 단성론자인 유티케스는 술 한 방울이 대양에 떨어지면 술의 속성이 대양에 흡수되고 말듯이 유한한 인성이 무한한 신성과 결합되면 신성에 흡수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성을 무시한 오류입니다. 
두 본성은 흡수되거나 혼합되지 않고, 구별됩니다.
두 본성은 그대로 유지되는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을 이룹니다.

어떻게 두 본성이 구별된 채로 한 인격을 이룰까요?
이것은 비물질적인 정신과 물질적인 신체가 한 인격을 이루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현대 의학은 정신적인 충격이 신체에 질병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보고합니다.
반대로 몸에 이상이 있을 때, 마음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어떻게 비물질적인 정신이 물질적인 신체 안에서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까요?
이것은 정신과 신체가 상호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은 상호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이것을 속성의 교류라고 말합니다.
속성의 교류 교리가 말하는 바는 간단합니다.
1) 신성과 인성은 따로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2) 신성과 인성은 어느 한쪽으로 흡수되어 연합되지 않는다.
3) 신성과 인성은 구분되지만 분리되지 않고, 구별되지만 흡수되거나 혼합되지 않는다.
4) 신성과 인성은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속성이 교류되면서 한 인격을 이룬다.

자,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신이면서 인간입니다.
왜 이것이 그토록 중요합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대속 제물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그 대속 제물이 하나님께 드려진 곳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한 손으로는 하나님을, 다른 한 손으로는 인간을 이끌어,
서로 악수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난다고 할 때, 우리는 번듯한 모습으로 만나는 게 아닙니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하나님과 만납니다.
우리의 가장 저주스러운 모습으로 하나님과 만납니다.
우리의 가장 추악한 죄인의 모습으로 하나님과 만납니다.
가장 불결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섭니다.
범죄한 이후,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죄인인 우리 앞에 오시지 못합니다. 왜요? 우리가 죽으니까...
보통 때 같으면 인간이 죄인인 채로 하나님과 만날 때, 의로우신 하나님이 우리를 즉결처분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저주스럽고, 불결하고, 악하고, 더러운 모습에 분노하시며, 심판하고야 말겠지만, 십자가에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왜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중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인인 채로 하나님께 감히 나와서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구원의 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십자가에서 활짝 열리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모습이 비루하고, 누추해도 괜찮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중보하시고, 우리를 위해 대속의 제물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앞으로 당당히 나아갑시다.